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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유대인 분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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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어이없는 사례 == 이처럼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유대인' 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반유대주의가 철저히 금기시되기 이전까지 서구 문화권 국가 전반에서 반유대주의가 만연해 있었고, 이처럼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던 근세~근대 초중반까지는 오히려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으로 유대인을 억누른 다른 지역에 비해 독일 문화권이 오히려 유대인들이 터 잡고 살기에 유리한 지역이었던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동유럽 문제 전문가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에 따르면 루마니아 등 원래 독일계 인구 비중이 적은 지역에서는 독일식 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대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을 정도로 독일 문화권이 중-동부 유럽의 유대인 사회의 거점이었던 것. 이처럼 상대적으로 차별이나 박해가 덜 한 독일 문화권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정착하고 대를 이어 살아온 유대인들이 그 지역 사회에 정착하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 역시 가지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나치가 정한 유대인 기준 [[뉘른베르크 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유대인 외모를 가진 자는 유대인으로 규정한다거나 상당수 독일계 유대인은 제외되는''' 등의 객관성, 일관성은 아예 없는 [[왜곡]]된 기준들이다. [[충공깽]]한 수준. 즉 히틀러는 그저 감정의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다시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전쟁이 필수였고, 전쟁은 곧 돈이다. 막대한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국민을 갈취해댔다간 히틀러 자신이 찍혀나가니, 자국 내 필수품 사업체 여러 개를 운영하는 돈 많은 떠돌이 민족 유대인은 여러모로 히틀러의 좋은 타깃이었다. 또 당시 유대인들은 영토나 국가가 없어 차후 합법적 보복이 불가능하다 판단될 정도로 만만한 [[희생양]]들이기도 했다… 만약 유대인이나 집시들이 영토를 가진 정식 국가였다면 종전 후 구체적 피해 금액 요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스라엘]]이 건국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홀로코스트라는 게 있었다 수준이었지만, 미국의 중동/아랍지역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인해 이스라엘이 주목받고, 홀로코스트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비해, 집시, 공산주의자, 기타 반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보상 및 사과는 매우 미흡하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다 나치 고관들은 자신의 친구나 지인이 유대인이거나 했으면 '''그들은 은근슬쩍 학살에서 빼주기도 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헤르만 괴링|돼지]]는 물론이요 그 히틀러마저도.''' 가령 에두아르트 블로흐(Eduard Bloch)라는 유대인 의사는 히틀러의 어머니를 치료해주고 치료비를 깎아준 적이 있어서 히틀러가 그를 대단히 좋아했다. 1940년까지 히틀러의 특별 보호를 받았고 "모든 유대인이 블로흐 같았다면 유대인 문제는 있을 수가 없다"라는 발언까지 할 정도였다. 블로흐는 유대인 탄압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긴 했지만 재산을 제대로 챙겨서 갈 수 있을 정도로 대우를 받았다. 또한 1차세계대전 때 본인이 속한 연대의 지휘관이었던 에른스트 헤스(Ernst Moritz Hess)도 특별히 봐준 적도 있으며 거기에 [[에밀 마우리스]](Emil Maurice) 또한 유대인 혈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당원 초기부터 같이 지내던 인맥으로 [[하인리히 힘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명예 아리아인 칭호를 주면서 슈츠슈타펠의 장교직에 붙었다. 결국 나치 기준으로도 '''자기가 유대인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조상님들 가운데 유대인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유대인으로 찍혀서 끌려가서 살해당할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사자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편협한 인종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위험하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이전에도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나치처럼 무조건적 말살을 당연시한 사례는 없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정적으로 유대 사회는 모계 사회이다.''' 이 원칙은 기원 후 70년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완전히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 중국까지 진출. [[카이펑 유대인]] 항목 참조.](특히 [[유럽]])로 흩어지면서 아버지가 누군진 몰라도 엄마는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기에 지켜져 왔던 원칙이다. 즉,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자가 현지인 여자랑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자식도 현지인들과 결혼해 후손을 낳고 또 낳아서, 유대인 사회를 떠나 현지인 사회 일원의 하나로 정착해버린 경우도 많았다. [[유대인]]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혼외정사|사고 쳐서]] 낳은 [[사생아]]들도 많다. 70년부터 시작된 유대인 민족 대이동 [[디아스포라]]는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기 전까지 무려 186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뤄졌는데 히틀러 그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자신의 어머니도 가계를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유대계 피가 한 방울이라도 안 섞였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순수 혈통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짬뽕 혈통이 된 지 오래이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순수 혈통으로만 이루어진 민족 따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 해도 그건 인구가 부족급 단위로 적고 교류도 없었던 곳에나 가능하지 인구는 몇백만 이상의 광역급+교류의 역사도 있었던 곳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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